이 모든 것 이전에도, 당신은 이미 누군가였습니다

정체성, 역량, 그리고 무너지지 않는 나에 대하여
숨이 막힌다고 했습니다.
한 코칭 클라이언트가 최근 직업적인 위기를 겪었습니다. 단순히 일이 꼬인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그 일은 삶의 더 깊은 곳을 건드리고 있었습니다. 쉽게 떨쳐낼 수 없는 무거움, 상황에 비해 지나치게 크게 밀려오는 절망감, 그리고 그 아래에 자리한 — 이름 붙이기조차 어려운 두려움.
우리는 그 감정 앞에 함께 머물렀습니다. 서두르지 않고, 조금씩 더 깊이 들어갔습니다. 그러다 한 가지 핵심 믿음이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너무 오랫동안 그 안에서 살아왔기에, 그것이 자신을 둘러싼 벽이라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던 믿음이었습니다.
“나는 내 역량을 통해 인정받고 사랑받는다.”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그 말은 단순한 생각이 아니라, 삶 전체를 붙들고 있던 뿌리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위기가 감당하기 어려웠던 이유는 단지 직업적으로 무언가 잘못되었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붙들어주던 기반 자체가 흔들렸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종종 ‘나’라는 감각을 내가 하는 일, 내가 만들어내는 성과, 그리고 사람들이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위에 세워둡니다. 그렇게 되면 한 번의 실패만으로도 존재 전체가 흔들리는 자리에 서게 됩니다. 역량은 단순히 내가 기여하는 무언가가 아니라, 내가 사랑받아도 되는 사람이라는 증거가 되고, 어딘가에 속할 자격이 있다는 조건이 됩니다.
그래서 더 열심히 일합니다. 더 많이 이루고, 더 높은 기준을 세우고, 끊임없이 자신을 밀어붙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그 믿음을 유지하기 위한 시스템을 만들어갑니다. 하지만 결국 그 시스템은 버티지 못하는 순간을 맞이합니다. 우리는 끝없이 성과를 낼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랑받고 있다는 감각, 어딘가에 속해 있다는 감각이 ‘절대 실패하지 않는 것’ 위에 세워져 있다면, 그 삶은 오래 지속될 수 없습니다.
결국 어느 순간 위기가 찾아옵니다. 역할이 사라지기도 하고, 기대했던 결과가 오지 않기도 하며, 익숙했던 기반 자체가 흔들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위에 자신을 세워왔던 사람은, 마치 아무것도 없는 곳에 홀로 남겨진 것 같은 감각과 마주하게 됩니다.
저는 이 패턴을 거의 모든 코칭 관계 안에서 보아왔습니다. 직함이나 업종, 성공의 크기와는 상관없었습니다. 오히려 가장 뛰어난 성과를 내온 리더일수록 이 믿음을 더 깊이 품고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역량은 인정을 가져다주었고, 성과는 새로운 기회를 열어주었습니다. 그러니 그 믿음은 점점 더 사실처럼 느껴집니다. 실제로 삶이 그것을 증명해주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더 이상 그 방식이 통하지 않는 때가 옵니다.
그때의 대가는 결코 작지 않습니다. 성과를 향해 달려오던 몸은 결국 멈춰섭니다. 흔히 ‘번아웃’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그 말만으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유능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이, 어느 순간 자신이 쌓아온 삶의 중심에 더 이상 닿지 못하는 감각.
에너지는 사라지고, 한때 열정이었던 일은 의무가 됩니다. 그리고 피로의 가장 깊은 곳에는 단지 역할을 잃은 것이 아니라, 그 역할이 붙들고 있던 ‘나 자신’을 잃어버린 것 같은 상실감이 자리합니다.
더 힘든 건, 이 패턴이 무너지는 순간에도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는 점입니다. 흔들릴수록 더 증명하려 하고, 더 빨리 이루려 합니다. 마치 두려움을 앞질러 달아나려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본능은 우리를 결국 가장 피하고 싶었던 자리로 데려갑니다. 무너짐은 갑작스러운 사고가 아니라, 처음부터 그 길 끝에 놓여 있던 결과였던 셈입니다.
사실 우리 대부분은 이미 어느 정도 이것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정체성의 문제를 더 이상 미뤄둘 수 없는 시대이기도 합니다.
AI는 산업 전체를 바꾸고 있고, 수많은 역할과 일의 형태를 다시 정의하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나를 설명해주던 직업적 정체성이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흔들리고 있습니다. 내가 하는 일, 내가 불리는 이름, 내가 인정받아온 이유 — 그 어떤 것도 예전처럼 단단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결국 이 질문 앞에 서게 됩니다. 준비가 되어 있든 아니든 말입니다.
“그것 없이,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은 단순히 직업이 없을 때의 나를 묻는 것이 아닙니다. ‘내 직업이 나를 사랑받을 만한 사람으로 만들어준다’는 믿음이 사라졌을 때, 그때도 남아 있는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질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질문입니다.
제가 리더들과 함께하는 작업은 — 그리고 어쩌면 지금 이 시대가 우리 모두에게 요구하고 있는 일은 — 단순히 변화에 잘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변화가 가져갈 수 없는 ‘나’를 세워가는 일입니다.
내가 무엇을 생산하는가가 아니라, 내가 누구인가에 뿌리를 둔 정체성. 역할이 아니라, 역할 아래에 존재하는 사람 자체에 기반한 삶 말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제가 어떻게 그 정체성을 다시 발견하게 되었는지 나누고 싶습니다. 정답을 제시하려는 마음은 아닙니다. 다만 제 삶 깊은 곳을 실제로 변화시켰던 이야기를 솔직하게 전하고 싶습니다.
저에게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다시 발견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사실 그 개념 자체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패와 위기의 시간을 지나며, 그것은 더 이상 머리로만 아는 문장이 아니라 몸으로, 마음 깊은 곳으로 믿어야 하는 진실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것이 실제가 되었을 때 — 내가 온전하게 지음받았고, 목적을 가지고 이 세상에 보내졌으며, 무엇을 이루어서가 아니라 존재 자체로 사랑받는다는 사실을 마음 깊이 받아들이게 되었을 때 — 제 삶의 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온전하게 만드셨고, 내가 그분의 것이라면, 저는 이미 가장 귀한 존재입니다. 무엇을 이루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가 만나는 모든 리더들, 코칭 자리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 역시 그렇다고 믿습니다.
그 기반은 폭풍 한가운데에서도 저를 붙들어주었습니다. 더 이상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하려 애쓰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성과는 여전히 제 여정의 중요한 일부이지만, 그것이 저를 정의하지는 않습니다.
실패 역시 더 이상 저를 무너뜨리는 판결이 아니라, 품고 지나갈 수 있는 경험이 되었습니다. 어려운 시간들은 ‘나는 부족하다’는 증거가 아니라, 삶이 저를 빚어가는 과정으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저와 같은 방식으로 그 자리를 발견하게 될 거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히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반드시 그런 기반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역할 아래에 있는 무언가. 상황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는 무언가 말입니다.
이번 주를 위한 초대
너무 많은 것이 흔들리는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역할도, 산업도, 역량의 의미조차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오늘 한 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무엇이 당신을 붙들어주고 있나요?
그리고 그 자리에서, 당신은 누구인가요?
이번 주에는 잠시 시간을 내어 그 질문 앞에 머물러보셨으면 합니다. 과제를 하듯이 말고, 자신에게 다시 돌아가는 마음으로요. 글로 적어도 좋고, 조용히 소리 내어 말해봐도 좋습니다. 복잡할 필요는 없습니다.
폭풍과 변화는 앞으로도 계속 찾아올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무 기반도 없는 곳에서 그것을 견뎌낼 필요는 없습니다.
당신을 붙들어주는 자리는 이미 존재합니다.
우리는 지금, 그 위에 서는 법을 함께 배워가고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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